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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3.18 영국인들의 뜨거운 음식에 대한 갈망.

 인터넷에 "영국", "기후" 이렇게 두 단어를 입력하고 무엇이 나오는지를 지켜보면 대체로 하는 말이 이렇다.

 "연중 비슷한 기후."

 "잘 변하지 않지만 온화한 기후."

 그런데 그 말들이 최악의 기후에 해당되는 말이라면...? 그것이 바로 내가 1월에 영국에 도착한 이래로 겪고 있는 날씨다.

 그 어떤 가이드북도 내게 영국에(1월에) 가면 눈이 올 거라고 말해준 적이 없다. 사실 가이드북들은 영국의 겨울 기온은 10도 정도라고 한결같이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리털 점퍼도, 따뜻한 모직 코트도 버리고 왔건만, 내가 도착 일주일만에 직면하게 된 상황은 아래와 같다.

눈 오는 날의 베어핏(Bearpit, Bristol)

 그 날은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아침에 룸메이트와 함께 어학원까지 걸어가야만 했다. 버스고 뭐고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고, 신문 헤드라인은 "영국, 시베리아에서 온 눈에 질식당하다", "100년 만의 기록적인 폭설"(우리나라 언론만 이런 말을 쓰는 게 아니라니 안도라고 해야 하나?) 등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자연스럽게 종일 집에 앉아서 날씨 사이트, 특히 BBC Weather만 새로고침하고 있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마저도 우리나라 기상청처럼 날씨 생중계하기에 바쁜 경우가 태반이다. 물론 하루 중의 날씨는 정확하게 시간대별로 예견한다. 예를 들어, 오늘 같은 경우 BBC 날씨에서는 '오전에 비 오고 점심 때쯤 맑아서 저녁쯤 다시 흐려짐' 이었는데, 아주 잘 들어맞았다.

 *

 날씨는 사실 이제 그러거나 말거나고(불평불만을 늘어놓아 봤자 내 손해다), 내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영국 사람들의 '뜨거운 음식'에 대한 집착이다. 아니면 온도, 또는 체온에 대한 집착이라고 해야 하나? 영국이 괜히 홍차의 나라가 아니다. 대개는 심리적인 안정감이나 문화적인 요인 때문에 영국 사람들이 홍차를 좋아한다고 하고, 또 그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이 바로 '뜨겁다'는 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영어 회화 책이나 고등학교 영어 듣기 평가 문제집을 보면, 꼭 다음과 같은 상황이 등장한다.

 A: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손님?
 B: 불만이 있어요. 이 수프는 전혀 뜨겁지 않아요.
 A: 대단히 죄송합니다. 어떻게 해 드리면 좋을까요? 수프를 다시 데워 드릴까요?
 B: 아니요, 환불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여태까지는 한 번도 이런 내용이, 듣기 평가를 위해 만들어진 작위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똑같은 내용을 레스토랑에서나 룸메이트로부터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스튜가 뜨겁지 않다, 토스트가 뜨겁지 않다... 심지어는 구운 콩이 뜨겁지 않으면 사람들은 음식을 먹지 않거나 불만을 표시한다. 관찰 결과 40도 이하의 음식은 "stone cold"라고 표현되는 것 같다(...).

*

 그래서 영국 사람들은 오늘도 와사비(Wasabi, 유명 일식 테이크아웃 체인)에서 스시와 주먹밥을 사 먹으면서 "healthy food"라고 극찬을 늘어놓고, 한편으로는 내가 빵을 좀 빨리 넣는 바람에 토스트가 약간 식어 있으면 먹지를 않는다. 3월인데 아직도 영상권을 겨우 넘어가는 기온도 문제지만, 여기에는 봄이 시급하다. 빨리 도입해 주세요. 현기증 나네.

Posted by 미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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