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5.10.21 Putting end to the monologue
  2. 2015.10.07 그의 죽음에 부쳐.

Putting end to the monologue

일상 2015. 10. 21. 13:52 |

9월의 나는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우울했었다. 물론 매일같이 너무 많은 일을 했고, 내 능력에 과분한 프로젝트를 받아 혼자 진행한다는 느낌마저도 들고, 날짜는 이상하게 꼬여서 월말에 해야 할 일이 앞으로 당겨져 오고.... 무엇보다도 나는 혼자였다.

물론 그것과는 완전히 별개의 일임을 나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마침표를 찍을 때가 왔다. 

지금은... 그래, 지금은 괜찮다. 하지만 앞으로는 더욱 버틸 수 없을 것 같다.

그냥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자위하고 지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 멍청한, 또는 순진한 불씨는 어느 새 내 몸을 거진 반쯤 태워버린 것 같다. 단어들이 입에서 맴돌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들이 계속된다. 참으로 오랜만에 나는 손이 빛나는 그 모습을 보았다. 오래 전에 불태워버린 우상의 신전이 나타난 것과 같다. 다만 이번에는 그것이 내가 믿는 신의 형상을 하고 나타났는지, 잘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소렌티노의 비유는 너무나도 정확했다. 그 사당을 무릎으로, 내 온 몸으로 기어오르라고 본능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앞에서 말들은 기만이 된다. 육체를 묘사하는 말들이 그렇게 부족하고 또 상스러운 것이라고 이전에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스스로 말하면서도, 아, 이것은 그저 긁어 부스럼에 지나지 않는구나. 그렇게 깨닫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일시적이리라 걱정을 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닌지도 모르겠다. 보통 같았으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걸까, 라고 걱정이라도 해야 할텐데 이제는 걱정도 포기한 느낌. 왜냐면 내가 자유의 길을 가는 것을 알기에. 

한때는 그것이 속박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고 생각했었기에 지난 시간 동안 그 길을 걸어 왔다. 타인의 힘을 빌어 나를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인지도. 그로 인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음에 감사할 뿐이다. 어찌 보면 사람은 지독하게도 변하지 못하는 생물인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 변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쪽인지는 모르겠다. 새로이 걸으려는 그 길은 사실 아주 오래된 길이기도 하다. 어떤 아주 오래된 방종의 길. 이제는 조금은 사리분별이 되지 않겠냐는 그 헛된 희망을 안고 다시 한 번 낚시배에 오르려는 멍청하고 위험한 모험의 시도. 


계속해서 흔들리는 닻을 아제는 다시 올릴 때가 왔다. 

오랜 무언극을 끝내고 외치는 감사의 인사, 퇴장, 그리고 다음은 다시 침묵.  


Posted by 미키씨
:

그의 죽음에 부쳐.

일상 2015. 10. 7. 15:42 |

지인이라고 부르기엔 그보다 가깝고, 친구라고 부르기엔 먼 어떤 한 사람, 그가 그저께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했다.

아주 짧은 만남을 가졌었지만, 내가 생각하는 그라면 그의 죽음은 궁극적인 자기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유서를 그렇게나 많이 남기고... 갔다고 들었다. 그의 죽음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너무나도 가볍고 적지만, 아무 것도 적지 않는 것은 그의 죽음에 부끄러운 일인 듯하다. 그가 남기고 간 외침에 누군가는 대답을 하려고 노력했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어 결국 블로그를 켰다.


망자가 가고 난 후에 산 자가 하는 후회가 무슨 소용이 있으련만, 언젠가 꼭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듣자는, 지하철에서 잠시 나누었던 그 말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한데, 그가 갔다.

그와 나는 2014년의 어느 날, 약 다섯 시간 정도를 이 생에서 함께했다. 그것도 신촌 길바닥과 2호선, 1호선 지하철 안에서. 그에 비하면 나는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신촌에 나갔었는데, 사뭇 비장한 표정이었던 그가 생각난다. 부끄럽게도 내 기억은 정확하지 못하다. 사실 같은 소속도 아니었던 것 같고- 그는 내가 소속되어 있는 곳에 회의를 느낀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우리는 여러 가지, 그와 이름이 같은 어떤 사람에 대해서, 그리고 나의 하찮은 직업과 우리의 정체성을 지고 살아가야 할 이 세상에 대해서 애기를 나눴었다.

지금 생각건대 단지 하루 만난 나에게, 그토록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던 그의 마음이 어땠을까. 내가 너무 헤아리지 못했던 것 같다. 우리는 한때 같은 길을 걸었고, 같은 정체성을 공유한다 뿐이었지만, 그는 나에게 그날 처음보는 사람에게는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내밀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어떻게 그가 가정에서 독립투쟁을 벌여 왔으며, 그의 정체성과 연인의 존재로 인해 박해를 받았는지, 그리고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했을 때 얼마나 많은 우상들이 그의 곁을 지나쳐갔고, 또 그를 그토록 실망시켰는지. 그에게서는 분명하고 뚜렷한 노력('노오력'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과 절망의 흔적이 느껴졌다. 쏠로는 싫은데, 그렇게 말하면서 시리게 웃던 그 얼굴이 생각난다. 사실 그는 내 고등학교때 동창을 무진 닮았었는데- 그 말을 해 주고 싶었던 것 같다. 다시 만나면.


한 15분 전에, 사무실 화장실에 가서, 한숨을 푹 내쉬면서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10몇층이 좀 안되는 높이. 언제고 나는 높은 위치를 무서워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 너무나 빠르고 느릴 것 같은 그 영겁의 순간은 충분히 상상으로도 심장에 무리를 주었다. 그 높이 앞에서 나는 아직 해보지 않은 재미난 것들과 모험, 사소한 일상의 고통들, 그리고 지금 내가 벌이고 있는 무모하지만 너무 위험하지는 않은 일들을 떠올렸다. 그 거리를 그런 것들로 채우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타락한 나일 뿐이다. 끝내 나는 그 높이 앞에서 깃털같이 가벼운 세속의 욕망들과 공허한 재미들로 채워진 그 거리를, 납덩이같이 무거운 절망을 지고 너무도 긴 시간을 헤쳐 죽음으로 갔을, 그를 생각했다.

성당에 가서 꽃을 놓을까, 초를 켤까, 한참 고민했지만 어느 것도 성에 차지 않을 듯하다. 이번 주는 모든 죽음이 놓인 거리 앞에 서서, 무지개 리본을 달고 그를 생각하는 것으로 부족하나마 갈음하려고 한다.




Posted by 미키씨
: